인간극장, “최이장의 슬기로운 귀농생활”

(뉴미디어뉴스) 한 달에 한두 번, 마을 부녀회원 십여 명이 함께 모여 왁자지껄 반찬 잔치가 열리는 마을이 있다. 충청남도 홍성군에 위치한 두리마을이 바로 그곳. 앞장서 반찬 잔치를 지휘하는 사람은 두리마을 이장인 최익(61) 씨와 부녀회장 이정옥(60) 씨 부부다.

몇 년 전, 연달아 일어난 세 건의 고독사는 마을 전체를 충격에 빠트렸다. 한참이 지나도록 이웃의 죽음을 알지 못했던 것은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환경을 가진 두리마을 특성 때문이었다. 전주이씨와 경주이씨의 집성촌으로, 혼사도 마을 안에서 주로 이루어질 만큼 외부와의 교류가 적은 데다 빈부의 격차도 컸던 상황.

이런 이유로 마을의 화합이 오히려 더 쉽지 않은 형편이었다. 귀농 7년 차였던 최익 씬 이장을 맡아 마을을 바꿔야겠단 결심을 하게 된다.

부녀회의 도움을 받아 제일 먼저 시작한 일은 독거노인 스무분께 반찬 나눔 봉사를 하는 것. 반찬을 나누며 건강은 괜찮은지, 도움을 드릴 것은 없는지를 살피고 찾아오는 이 없는 외로운 노인들의 말벗이 되어 드리기도 한다. 신경 쓰는 또다른 것은 귀농인들의 정착을 돕는 것. 그 자신도 집 짓고 농사지을 땅만 덜컥 산 채 무작정 귀농해 100일 정도 텐트 생활을 하며 두리마을에 정착한 경험이 있기에 귀농 초반의 막막함과 암담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최익 씨가 이렇게 내 집일보다 마을 일에 더 우선순위를 두다 보니 늘 가장 힘든 사람은 아내인 정옥 씨. 본업인 아욱과 근대농사는 늘 수확 때를 놓치기 일쑤고 일하다 말고 갑자기 사라져버리는 남편 때문에 정옥 씨 혼자 농사일을 하느라 바쁜 날이 비일비재하다. 요즘은 코로나로 학교 급식이 중단되면서 판로가 막혀 고민도 깊다. 하지만 부창부수라고 했던가. 부녀회장인 정옥 씨는 최익 씨의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자 파트너다. 누구 하나 외롭지 않고, 모두 하나 되는 행복한 마을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쉴 틈 없이 마을 구석구석을 누비는 두리마을 최이장. 최익 씨의 삶을 인간극장이 동행해본다.

충청남도 홍성군에서도 도로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 ‘두리마을’ 이곳에 마을 주민들의 신뢰와 칭찬을 한 몸에 받는 부부가 있다는데. 밤낮없이 마을 일에 매달리며 우리 집 농사보다 마을 일이 우선이라는 이장 최익(61) 씨와 열혈 이장 남편에 보조 맞추랴, 농사와 집안 일하랴 정신없는 부녀회장 이정옥(60) 씨가 바로 그 주인공.

최익 씨의 하루는 이른 새벽, 동트자마자 시작된다. 아침 일찍 손수 쓴 원고로 전하는 안내방송을 시작으로 불편사항이 있는 마을 어르신들 집을 일일이 찾아다니면 문제를 해결해주고, 새내기 귀농인들의 정착을 돕기 위해 직접 농사 방법을 전수하고, 마을 적응 안내까지 하는 등 하루를 30분 단위로 쪼개 써야 할 만큼 바쁜 하루를 보내는데.

토박이든, 귀농인이든. 젊은이든, 노인이든. 누구 하나 소외되거나 외로운 사람이 없는 다 함께 행복하고, 화합하는 마을을 만드는 것이 두리마을 최이장의 목표다.

평화롭고 풍요로워 보이는 두리마을. 그러나 3년 전 마을 전체를 경악하게 만든 사건이 벌어졌다. 3명의 마을 사람들이 연달아 고독사한 것. 이웃의 죽음을 오랜 시간 눈치조차 채지 못했다는 사실에 누구보다 큰 충격을 받았던 최익 씨. 농사와 마을에 적응하기만도 바쁜 7년 차 귀농인이었지만 이장을 맡아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모두가 함께 행복한 마을을 만들어야겠단 결심을 하기에 이른다.

최익 씨가 마을 일 중 가장 심혈을 기울이고 신경 쓰는 것은 20명 정도 되는 독거노인들의 안부를 살피는 일이다. 부녀회원들의 도움을 받아 한 달에 한두 번씩 반찬을 만들어 마을의 독거 어른들을 찾아가고 살펴드리며 다시는 고독사 같은 아픔이 반복되지 않도록 애쓰고 있다.

지금은 두리마을 사람들에게 누구보다 인정받는 이장이 되었지만 사실 몇 년 전만 해도 낯선 이방인이었다는 최익 씨. 고되고 스트레스가 많았던 서울 생활에 지쳐 지인도, 일가친척도 하나 없는 낯선 동네에 덜컥 귀농을 결정했지만. 집을 짓는 동안 당장 머물 곳이 마땅치 않아 100일 정도를 텐트에서 생활하며 신용불량자, 범죄자, 도망자 등 각종 오해와 불신의 눈초리를 받기도 했었다.

전주이씨와 경주 이씨의 집성촌인 두리마을은 오랜 기간 동안 외지인과의 교류가 없던 곳이었고 낯선 이방인인 최익 씨에게 마을 주민들은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최익 씬 그럴수록 마을 주민들에게 먼저 다가가 살갑게 인사도 건네고 마을에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누구 보다 앞장섰다. 처음에는 의심 어린 눈초리를 보내던 마을 주민들도 한결같은 그의 모습에 점점 마음을 열고 최익 씨를 두리마을 사람으로 받아들여 주게 되었다. 귀농 10년 차인 지금은 부부가 이장과 부녀회장을 맡아 일하며 마을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사람들로 인정받고 있다.

이렇게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이제야 두리마을에서 가장 인정받는 이장이 된 최익 씨. 그런 그를 유일하게 마뜩잖은 눈빛으로 보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아내 정옥 씨다.

사실 이장이기 전에 농사꾼인 최익 씨. 정옥 씨와 함께 유기농으로 아욱과 근대 농사를 짓고 있는데. 함께 열심히 일하다가도 전화 한 통 울리면 한마디 말도 없이 슬그머니 사라졌다가 두세 시간은 훌쩍 지나 돌아오기 일쑤인 최익 씨. 마을 일에 쏟는 정성 반만이라도 집안일에 쏟으면 좋으련만. 오늘도 마을 일을 위해 도망 아닌 도망을 가는 남편을 보며 한숨이 절로 나오는 정옥 씨다. 결국 근대와 아욱 수확은 매번 정옥 씨 몫이 되고 마는데. 귀농 초기 호미도, 낫도 구분 못 하는 오리지널 서울 여자였던 정옥 씬 마을 일에 빠져있는 남편 덕에 어쩌다 베테랑 농부가 되었단다.

하지만 부부는 닮는다고 하지 않던가. 정옥 씨도 부녀회장으로 마을 일에 누구보다 열성이다. 이장 남편이 벌여놓은 일 함께하랴, 농사하랴 무척이나 바쁘지만 마을 일하며 느끼는 기쁨이 같으니 결국 웃으며 함께한다. 나만의 행복보다는 마을 전체와 함께 행복하고 싶다는 최익, 이정옥 씨 부부.

두 사람의 슬기로운 귀농생활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